경찰 과학수사대원들이 살인사건을 가정해 현장감식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2014.9.17/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홍기삼 기자 = 지난 6일 저녁 강신명 경찰청장은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한동안 통화가 이어진 뒤 강 청장은 "잘하셨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청장 감사전화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이맹호 서울 강서경찰서장이었다. 그날 이 서장은 강서구 방화동 K건설사 사장 살해범 검거소식을 보고했다. 3월에 발생한 살인사건을 추적한 지 7개월 만에 범인을 붙잡은 것이다. 이로부터 열흘 뒤 이번 범인검거는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강서경찰서는 3월부터 강력 7개팀을 전원 투입하고 서울경찰청으로부터도 2개팀을 지원받는 등 수사본부에 준하는 수사전담팀을 편성, 범인을 쫓아왔다. 사건 초기 단서는 역시 CCTV였다.

경찰은 살인사건 현장 인근의 CCTV에서 범행 직후 '하나의 점' 크기로 보이는 인물이 신방화역 방향으로 급히 뛰어 도주하는 장면을 확인했다. 범행시각과 근접한 시간에 급하게 현장을 벗어난 점에서 경찰은 이를 용의자로 판단했다.

이후 경찰은 인적사항 특정을 위해 광범위한 CCTV 추적 작업에 들어갔다. 살인사건 현장 진입로와 예상 도주로에 있던 약 120여대의 CCTV를 정밀분석, 이중 용의자의 모습이 촬영된 21대의 CCTV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동시에 경찰은 기나긴 탐문수사에 들어갔다. 강서구 방화동, 공항동 일대 이동로상에 위치한 개별 가구 등 1457세대, 약 5853명에 대해 개별 면접 수사와 함께 원한 범행 가능성에 대비해 1870명을 따로 탐문했다.

결정적인 단서 역시 CCTV에서 나왔다. 용의자의 것으로 보이는 '발목'만 녹화된 CCTV 화면을 확보해 인근 현금인출기 사용내역을 통해 용의자의 인적사항을 최종 확인하게 됐다. 이후 국립과학수사연수원으로부터 '신장계측', 경찰청 과학수사센터로부터 '걸음걸이 분석', 법영상분석소로부터 '동일인 감정' 등을 거쳐 주변인물로 수사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이런 과정을 거쳐 살인범과 살인을 교사한 범인 2명 등 총 3명의 피의자를 잇달아 검거하게 됐다.

7개월 간의 대장정이 마무리되면서 올해 서울지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 모두 해결되는 '미제 사건, 제로'의 기록이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경찰은 올 1월부터 9월까지 서울지역에서 발생한 살인, 살인미수, 예비, 방조 등 '살인죄종' 사건 127건 모두 범인을 검거했다. 적어도 서울에는 '살인의 추억'같은 미해결 사건이 없는 것이다.

경찰은 세계 최고수준의 과학수사기법, 수미터 간격으로 서울 전 지역에 촘촘히 세워진 CCTV, 과거에 비해 몇 배 더 빨라진 경찰의 초동 대처 등이 이를 가능케 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비롯해 아직 서울 외 지역의 살인 미제 사건은 '기록'으로 존재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관련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최종 행적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경찰의 오랜 숙제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범죄는 갈수록 치밀해지고, 범인은 쉽사리 물증을 남기려 하지 않는다. 은폐되고 지워진 단서를 찾아 범행 현장을 재구성, 범인의 윤곽을 찾아가는 과학수사는 그래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억울한 죽음은 없어야 한다.' 김기정 계장을 중심으로 12명으로 구성된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과수계)는 각자 저마다 전문성으로 범행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현장에 답이 있다

2011년 11월의 어느 날. 대구경찰청 과수계 요원들은 대구의 한 빌라에 부부로 추정되는 남녀가 피를 흘린 채 숨져 있다는 급보를 받고 출동했다. 거실에 있는 두 구의 시신. 그들이 흘린 피의 상당 부분은 닦여 있었다. 범인은 범행 흔적으로 지우거나 없애느라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듯했다. 

그러나 요원들의 눈을 가리지는 못했다. 백지 상태에서 요원들의 퍼즐 맞추기가 시작됐다. 현관의 닫힌 전자도어록은 범인이 이곳을 통해 침입, 도주했다는 사실을 묵시적으로 알리고 있었다. 이는 면식범의 소행이라는 단서. 세밀한 수색 끝에 발견된 화장실 문턱과 세면대 출입문 안쪽 바닥의 작은 혈흔엔 물이 섞여 있었다. 범행 과정에서 범인이 부상을 당했고 그 흔적을 없애려 씻은 것이 분명했다. 그의 마지막 손길이 닿은 곳은 어딜까. 요원들은 화장실 수도꼭지를 지목했고 장시간에 걸친 수색으로 지문 하나를 확보했다. 

지문을 분석한 결과, 그 지문의 주인은 윗집에 세들어 사는 남자였다. 용의자가 특정됐고, 그는 며칠 뒤 현금인출기의 CCTV에 모습이 찍히면서 붙잡혔다. 완강히 범행 사실을 부인하던 그는 과수계가 확보한 증거에 더는 고개를 가로젓지 못했다. 오른쪽 손가락에 난 상처, 희석 혈흔에서 발견된 DNA에 결국 자백했다. 집주인의 통장 비밀번호를 알자 돈을 빼앗을 요량으로 치밀하게 계획한 범행이었으나 과수계 요원들의 치밀한 분석은 피해갈 수 없었다.

◆멈추면 끝이다

수많은 범행 현장을 마주하는 과수계 요원들이 저마다 가슴속에 새기는 좌우명은 '멈추면 끝이다'다. 이는 과학수사에서 단서를 찾아내지 못하면 범인을 잡을 수 없다는 강박관념이며, 또한 날로 치밀해지는 범행 수법에 연구와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자며 자신에게 던지는 채찍이다. 이런 노력은 대구청 과수계가 전국 최고의 수사력을 자랑하게 하는 배경이다.

현장에서 범행의 단서를 찾는 일은 쉽지도, 만만한 일도 아니다. 머리카락보다 작고 가는 흔적을 찾자면 몇 시간째 바닥과 천장, 벽면을 훑어야 한다. 허약한 체력과 나태한 정신력으로는 버텨낼 수 없는 일이다. 

김영규 경위는 "과학수사 요원들은 범죄현장의 정리되지 않은 모습을 최초로 보고, 그 속에서 단서를 찾는다. 웬만한 비위로는 견딜 수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오직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데 집중한다"고 했다. 그래서 과수계 요원들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스스로 용납지 않는다. 언제 발생할지 모를 사건과 현장감식에 대비해 늘 긴장의 끈을 죈다. 요원 대부분이 퇴근 후에도 술을 마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고의 팀워크

김기정 계장은 2007년 대한민국 과학수사 대상을 받고 올해 경찰의 날 대통령 표창을 받는 등 전국적으로 알아주는 20년 차 과학수사통이다. 그는 경북대 의대 법의학 박사 과정을 밟으며 쌓은 지식과 경험으로 현장을 지휘하고 있다. 단 하나의 핏방울로 범죄현장을 재구성하고 화마가 지나간 메케한 잿더미 속에서 화재 원인을 찾는 혈흔 분석 및 화재 분야 베테랑 김영규 경위, 현장만 봐도 범인의 행동과 심리를 분석해내는 국내 1호 범죄행동 분석 특채요원 추창우 경사(경북대 심리학 석사), 일본 오사카대 범죄심리학 박사인 박희정 범죄분석관, 합성분말의 폐해와 고가의 외국산 지문 분말을 개선하고자 천연분말을 개발한 연구자이며 현장맨 김성동 경위 등 대구청 과수계 요원의 면모는 전국 최고를 자랑한다. 김기정 계장은 "요원 모두가 과학수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석`박사 과정을 밟는 등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구청 과수계는 숱한 특허와 독특한 아이디어로 제품을 개발, 전국 경찰에 보급하고 있다. 2008년 6월 아시아권 최초로 한국혈흔형태분석학회(KABPA)를 창립했고, 매년 그 학회를 대구에서 열고 있다. 2010년에는 법정에서 사용되는 혈흔의 명칭을 표준한글화위원회를 거쳐 확정. 전파했으며 올해엔 딸기와 산수유 등 천연물질을 이용해 몸에 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기존 시약보다 지문을 뜨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인 지문 채취용 분말도 개발했다.

이처럼 대구청 과수계가 연구개발해 출원한 특허만도 10여 종이고, 혈흔분석`차량화재 재연실험`걸음걸이기법 등 전국으로 전파한 수사기법 또한 여러 건에 이른다. 


최두성 기자 dschoi@msnet.co.kr







“국민의 마지막 인권인 ‘검시(檢視)’체제가 부실해 원인미상 사망률이 10%에 달한다”는 세계일보 보도(9월 15∼18일자 참조·관련기사 4면)에 대해 정부는 현재 23명인 국가 법의관을 100여명까지 늘리기로 했다. 아울러 진로가 막혀 고사상태인 각 대학 법의학 교실 활성화 등 법의학자 양성 방안 및 서울지역 법의관 현장검안 시범 실시도 추진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중석 원장은 10일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과 협의해 일단 올해 법의관을 5명 늘리기로 했으며 순차적으로 100명까지 증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 원장은 또 “법의 양성 방안에 대해서도 법의학회와 논의 중이며 내년에는 서울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변사 현장에 법의관이 현장 검안을 나갈 계획”이라며 “인력이 충분하지 않지만 여차하면 나도 계급장 떼고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부 내 검시체계 개선 논의는 지난달 23일 안행부 정 장관이 서 원장에게 국과수·법의학계 공동 개선안 도출을 지시하는 것으로 본격화됐다. 이후 서 원장은 지난 8일 대전에서 열린 대한법의학회 임시 평의원 회의에 직접 참석해 인력 양성 방안 등을 협의했다.

법의학회는 이와 별도로 검찰, 경찰과 각각 검시체계 개선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개선안을 논의 중이다. 박종태 법의학회장은 “8일 회의에서 대학은 인력을 양성하고 국과수는 이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 이견이 없었고 문제는 양성방법인데 앞으로 좋은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예방의학처럼 정부가 사회적 필요성을 인정해 법의학 레지던트 제도를 만드는 방안과 군 장기복무 군의관처럼 임상 경험있는 인턴을 뽑아 재정 지원을 해주면서 법의관으로 키우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원주 국과수 본원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선 여야 의원이 검시체계 개선 의지를 나타냈다. 새누리당 강기윤 의원은 “촉탁의에게 부검을 맡기는 이유가 전문인력이 없어서인데 정확성도 떨어지고 책임소재도 불분명한 만큼 법의관이 다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정치연합 박남춘 의원도 “세월호 사건 때 국가 근본을 바꿔야한다고 우리가 강조했는데 검시체계가 여기에 해당한다”며 근본적인 체계 확립 필요성을 지적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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