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8년 ‘과학수사 연구단’으로 시작된 검찰의 과학수사 역사가 올해로 45년을 맞았다. 진술 분석을 위한 거짓말 탐지기 2대를 들어오며 시작된 한국 검찰의 과학수사는 이제 디지털·DNA 등 다방면으로 진화하며 수사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올해 한국을 뒤흔든 초대형급 사건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 사건’ 수사에 전문 포렌식 장비와 요원이 투입돼, 삭제된 회의록을 복원해 국가기록원에 넘기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앞으로 3편에 걸쳐 DNA·진술분석·디지털 각 분야에서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김영대 과학수사기획관)의 활약상이 돋보였던 수사 사례를 통해 검찰 과학수사의 의의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본다.
 
/자료사진 = 대검찰청


[시리즈 ① DNA 수사] 4년 미제 ‘60대 할머니 준강도미수 사건’…숨어있던 쌍둥이 범인 찾다
 
“증거물에서 발견된 시료와 유전자형이 일치합니다.” “저는 알리바이가 있습니다.”
 
2012년 3월 서울서부지검 조사실, 피의자 신분으로 검사와 마주 앉은 김 모씨(35)가 일관되게 범행을 부인하며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검찰이 수사 중인 범죄는 발생 4년여가 지난 2008년 발생한 60대 할머니 준강도미수 사건.
 
피의자 김씨는 2008년 6월 인천 남동구 소재 김 모 할머니(67)의 가정집에 담을 넘어 침입, 도둑질을 하려다 발각되자 할머니를 뒤로 넘어뜨려 다치게 하고 달아난 혐의를 받았다.
 
김 할머니는 떠밀려 넘어지는 순간 범인의 티셔츠를 붙들었고, 당황한 범인은 붙들린 티셔츠를 벗어던지고 범행현장에서 도망쳤다. 범인이 남기고 간 티셔츠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용의자를 찾는 유력한 증거물이 됐다.
 
경찰은 티셔츠에서 채취한 시료의 DNA 정보 분석을 통해 김씨를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김씨의 DNA는 경찰이 확보한 티셔츠에 남아있는 DNA 정보와 100% 일치했다.
 
싱겁게 마무리될 것 같던 사건은 경찰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후 난관에 봉착했다. 김씨가 범행이 일어난 2008년 6월 11일 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며 알리바이를 주장하고 나선 것.
 
검찰은 김씨 측으로부터 입원 증거인 의료보험 급여내역을 제출 받아 확인했다. 그 결과 김씨가 범행일 당시 실제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난항에 빠진 검찰, 그러나 용의자의 것과 100% 일치하는 DNA 정보가 있는데 알리바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김씨를 용의선상에서 배제할 수는 없었다. 검찰은 이미 확보된 DNA 정보를 토대로 김씨를 계속 조사했다.
 
사건의 실마리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김씨에게 쌍둥이 형이 있었던 것. 김씨는 쌍둥이 형의 존재를 은폐하려 했지만 움직일 수 없는 DNA 분석결과를 앞에 두고 계속 진실을 숨길 수는 없었다.
 
2012년 4월, 검찰은 사건 발생 4년여 만에 사건의 진범인 쌍둥이 형 김 모씨를 붙잡았다. 대검찰청 DNA수사담당관실의 분석 결과 쌍둥이 형 김씨의 DNA는 범행현장에 남아있던 티셔츠에서 발견된 DNA와 100% 일치했다.
 
부인할 수 없는 DNA증거가 쌍둥이 동생 뒤에 숨어 있던 진범을 잡은 것이다. 쌍둥이 형 김씨는 징역 1년의 죗값을 치르게 됐다.
 
해마다 대검 DNA분석담당관실이 범죄 증거로 DNA분석을 실시하는 횟수는 평균 2만5000여건에 달한다. 확증을 기하기 위해 통상 1건당 2회의 분석이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평균 5만여건의 DNA분석이 대검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특히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들이 적극적으로 방어권을 행사하기 시작하면서 검찰 역시 객관적·과학적인 증거를 갖추기 위해 대검에 DNA분석을 의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배용원 대검 DNA수사담당관은 “범죄의 지능화에 따라 검찰의 수사 방식도 기존 진술 위주에서 과학수사를 통한 객관적 증거에 의한 수사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과학수사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DNA수사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imzero@asiatoday.co.kr








서울시 양천구 신월동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법의관과 법의조사관들이 시신을 부검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법원은 왜 부검 결과 수용 안했나 

검찰 '목졸려 사망' 부검결과 증거에 대법 "사체 이동중 손상 배제 못해"

하루 지나면 사망시각 단정 어려워

검시관 범행현장 신속 출동이 중요

1년간 3만5000명 검시… "인력증원·검시법 제정" 목소리


대법원이 지난달 28일 만삭 의사 부인 사망사건을 파기 환송한 것은 우리 수사제도 상 검시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법원은 "유죄라는 확신에 이를 정도로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검찰이 살해 혐의로 기소한 남편 백모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 1심과 2심 판결을 뒤집었다. 대다수 법의학 전문가가 백씨의 유죄를 뒷받침하는 소견을 내놓았음에도, 검시관이 범행 현장에서 배제되는 등의 고질적 문제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대법원 판결에 검찰이 당혹스러워한 것은 당연했다. 수사 초기부터 백씨의 범행을 입증할 증거가 충분하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부부만의 공간에서 벌어진 의문의 죽음은 애초에 목격자도, 죽음의 직접적인 증거도 없었다. 그러나 검찰에게는 '피해자는 목이 졸려 사망한 것'이라는 내용의 부검 결과와 현장을 정밀 분석한 증거 자료가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물론 저명한 부검 전문가, 법의학자들의 다수 견해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배척했다. "사체에 대한 부검이 사망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 실시되고, 그 과정에서 사체의 이동과 보관에 따른 훼손ㆍ변화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그 판단에 오류가 포함될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법의학자들이 결정적인 증거로 내세운 액사(縊死) 특유의 소견인 박씨의 '목 부위 피부 까짐'과 '목 주위의 내부 출혈'에 대해서도 "타인의 손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후에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손상일 텐데, 그걸로 어떻게 액사를 증명할 수 있냐"는 질문이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어 "일부 증인(법의학자)의 증언(소견)이 아니라, 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이나 자료에 근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망 원인을 밝힐 수 있는 최고의 과학적인 방법이 부검이라 확신하는 법의학자들에게 더 과학적인 분석을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국내 대표 법의학자이자 이번 사건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법정에 섰던 이윤성(59) 서울대 법의학과 교수가 "대법원의 결정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남편의 출근 시간 전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검찰의 분석에 대해서도 "피고인이 집을 나선 오전 6시41분 이후에 사망했을 확률적 가능성이 상당함을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망시각 추정을 위한 직장온도 측정이 시신 발견 후 8시간이 지난 뒤 병원 영안실에서 이뤄져 피해자의 사망시각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법의학자들의 소견을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5년 치과의사 모녀 살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재판부는 경찰이 시신이 있던 욕조 물의 온도를 재지 않았기 때문에 법의학자들이 추정한 사망시각을 토대로 출근 전 남편이 모녀를 죽였다고 볼 수 없다는 확정 판결을 내렸다. 가수 김성재 사망 사건도 마찬가지다. 

한 검찰 관계자는 "특히 이번 사건처럼 목격자가 없는 범행이거나, 살인 등과 같은 범죄에서 흉기와 같은 직접 증거가 없을 때 수사 기관은 법의학자들의 부검이나 현장 분석에 기댈 수밖에 없다"며 "이를 증거 불충분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법의학 교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증거들은 자취를 감추는 법"이라며 "사실상 24시간이 지나면 귀신이 와도 정확한 사망 시각을 추정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통상적으로 부검이 이뤄지는 곳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시신이 그 곳으로 이동하기까지의 시간, 범행 현장과 부검 장소와의 온도 차이나 환경 차이 등을 고려할 때 부검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 역시 부검은 사건이 접수되고 3일 후 이뤄졌다. 부검 당시 사체를 촬영한 사진에는 검안(현장에서 사체 외부를 보고 사망 이유나 시각을 판단하는 임시 부검의 형태) 당시 촬영한 사진에 없던 부분이 추가로 발견됐다. 이 때문에 대법원은 시신을 현장에서 병원, 병원에서 국과수로 옮기는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시신의 추가적 손상을 의심했다.

전문가들은 '검시 전문 인력 양성'과 이를 뒷받침할 '검시법 제정'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법원을 설득할 수 있는 '좀 더 과학적인' 분석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범행 현장에 출동해, 현장과 사체를 검시하는 검시관은 전국적으로 60명이 채 안 된다. 이들은 모두 각 지방 경찰청 과학수사계 검시팀에 소속돼 있다. 살인은 물론 통상적 변사 사건에도 모두 투입되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다. 한 검시관은 "1년에 통상 3만5,000명 정도의 시신을 검시해야 한다"며 "전문 검시 인력이 지금보다 최소 6배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죽음을 부검해야 하는지를 관할 지검 검사가 판단하는 현재의 검시 제도 역시 부검 지연의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에 따라 부검 조건을 법으로 규정한 '검시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채종민(60) 경북대(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부검 여부를 검사가 판단하는 건 인치지 법치가 아니다"며 "산 사람의 권리, 죽은 사람의 권리, 정확한 부검을 위해서라도 검시법 제정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경찰 관계자는 "법의학자, 법과학자, 경찰, 수사관들이 현장에 함께 가면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급한 대로 전문 검시 인력을 늘리기 위해 정부의 파격적인 정책 지원이 이뤄진다면, 미제 사건 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 새 증거 제시 사실상 불가능… 영구 미제 가능성

남상욱기자 thoth@hk.co.kr

범인으로 남편 백모씨를 지목해 공소를 제기했던 검찰은 대법원이 지적한 허점을 최대한 꼼꼼하게 채우는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미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5개월이나 지난 사건이라 추가 증거를 발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그래서 1ㆍ2심 재판 과정에서 제출된 부검과 현장 분석에 대한 전문가 추가 소견을 통해 '백씨가 아내를 살해한 것이 맞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도록 재판부를 설득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사망한 박씨가 욕조에 넘어져 자연적으로 질식사했을 가능성이 없다는 추가 소견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목 졸려 사망했다는 유력 증거로 제시했던 목 부위의 상처와 내부 출혈이 '사망에 이르는 과정에서 몸부림을 치는 과정에서 생긴 상처''자연적인 시반의 흔적'라는 재판부의 판단에 재연 등의 형태를 통해서라도 반론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 일각에서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대검찰청 형사과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을 읽어보면, 1%도 자연사 가능성이 없어야 한다는 걸로 받아들여진다"며 "만약 항소심에서도 대법원과 같은 취지로 사건을 해석한다면 사실상 수사기관에서는 불가항력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이번 사건의 진실을 밝혀낼 열쇠가 검찰의 몫으로 남게 됐지만, 미제 사건으로 둔갑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 것이다.

대법원의 파기 환송 판결에 따라 이번 사건은 최종 결론이 언제 내려질 지 시점을 기약할 수 없게 됐다. 통상 '무죄 취지'로 파기했다면, 항소심에서 대법원의 취지대로 판결을 내리고 다시 대법원에서 이를 확정하면 법정 공방이 종결된다. 그러나 대법원이 '다시 판단을 하라'고 했기 때문에, 항소심부터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재판을 하게 된 것이다. 1995년 발생한 치과의사 모녀 살인 사건의 경우 '1심 유죄, 2심 무죄, 3심 유죄 취지 환송, 2심 무죄, 3심 무죄 확정'을 거치며 7년 넘게 재판이 진행됐다. 이번 사건도 그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송옥진 기자 click@hk.co.kr





서울 대림동에서 지난 3월 발생한 살인사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 검시관들이 시신의 손가락에서 손톱을 채취하고 있다. /경찰청 제공


변사사건 年 3만5000여건에 법의관은 40여명 불과

非전문 의사들까지 현장 출동

사망 여부만 판단하고 미세한 증거 놓치는 경우 많아

허위로 검안서 작성하기도


#1. 지난 2월 중순 대구 효목동의 한 주택에서 이모씨(54·여)가 숨진 채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20여년 동안 법의관으로 근무한 권일훈 권법의학연구소장이 경찰 요청으로 현장 검안에 투입됐다. 사망 원인이 불분명한 단순 변사로 처리될 뻔한 이 사건 수사는 권 소장이 현장에서 이씨 뒷목을 덮은 머리카락을 면도한 뒤 누군가에 의해 끈으로 목이 졸린 자국, 그로 인해 피부 일부분이 벗겨진 자국을 발견하면서 타살로 급선회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멀티탭에서 나온 혈흔, 이씨의 시신 부검 결과 등을 종합한 경찰은 타살로 결론짓고 수사망을 좁힌 끝에 이씨의 여동생(52)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2. 한 달여 뒤인 3월20일 대구 삼덕동 경북대병원에서 정지향 양(3)이 숨졌다. 의사 박모씨(32)는 “목욕탕에서 넘어져 다쳤다”는 친모 피모씨(25)의 말만 믿고 사망 원인을 ‘급성외인성 뇌출혈’, 사망 종류를 ‘외인사(외부 요인으로 인한 사망)’로 기재한 사망진단서를 발급했다. 사망 원인이 불분명한 경우 관할 경찰서에 신고해야 하지만 생략했다. 검안의 양모씨(65)는 딸을 방치·학대해 숨지게 한 것을 숨기려 한 피씨의 사주를 받고 시신도 살펴보지 않은 채 사망원인을 ‘뇌출혈’, 사망 종류를 ‘병사(질병으로 인한 사망)’로 기재한 허위 검안서를 작성한 뒤 검안비로 25만원을 챙겼다. 박씨와 양씨, 경북대병원 의료법인은 의료법 위반 혐의로 각각 지난달 17일 불구속 입건됐지만 지향이의 시신은 이미 한 줌 재로 변한 뒤였다. 

법의학 지식을 갖춘 검안의가 변사 사건 현장에 투입돼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지향이 사건’처럼 형식적으로 이뤄진다. 시신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사망의 원인·종류 등을 파악해 범죄 현장을 재구성해야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지만 겉치레 검안은 초기 수사 때부터 혼선을 줘 수사를 어렵게 만든다. ‘시신이 몸으로 쓴 유서’를 읽어 내는 검안을 법의학적 지식이 없는 동네 의사 등 민간에 맡기면서 벌어진 부작용이라는 분석이다. 

○법의관 40여명에 변사사건 3만5000여건

양씨처럼 일반 개업의를 강력사건 현장에 검안의로 투입하는 이유는 국내 법의관 수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연평균 3만5000여건의 변사 사건이 발생하지만 법의관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속 23명을 비롯해 서울·연세·고려·경북·조선·전북·전남대 등 법의학 전공 교수들, 국과수 법의관 출신 개업의 등 40여명에 불과하다. 

국과수 법의관들은 연간 5000여건(1인당 연평균 220여건)의 부검 업무를 소화하느라 현장 검안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국과수 법의관 출신 개업의들도 권일훈·김광훈·이상용·조갑래·한길로 박사 등 5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서울, 대구·경북권, 부산·경남권 등 권역별로 소수만 활동하고 있을 뿐이어서 극히 제한된 일부 사건만 검안할 수 있다. 2005년부터 전국 지방경찰청에서 특별채용한 경찰 검시관들도 검안을 할 수 있지만 이들에게는 초동수사를 마친 뒤 검사에게 제출해야 할 시체검안서 및 사망진단서 작성 권한이 없다. 

의료법 17조에 따르면 치과·한의사를 포함한 의사만 시체검안서나 사망진단서를 작성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동네에서 감기 진료를 하던 내과 의사가 검안의 부족에 허덕이는 경찰의 요청을 받고 사건 현장에 출동하게 되는 것이다. 

서울 소재 일선 경찰서 과학수사팀에서 근무하는 김모 경사(40)는 “시신의 손톱 밑에 낀 살점이나 혈흔을 확보하려면 현장에서 손톱을 깎아 보관해야 하는데 동네 의사들은 사망 여부만 판단한 뒤 대충 넘어간다”고 토로했다. 

시신을 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혈흔의 방향이 바뀌고 섬유조직 등 미세증거가 사라지기 일쑤다. 김 경사는 “예전에는 시체 운구 차량을 타고 동네 의사들이 현장에 먼저 도착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들은 현장 보존보다 시신의 사망 여부에만 관심을 갖는다”며 “시신의 동공을 열어보겠다며 시신에게 다가가 현장을 훼손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했다”고 귀띔했다. 

○“국가가 검안제 관리·감독해야”

경찰은 현장 검안에 전문가를 제대로 투입하려면 현재 인력의 4배 이상인 160여명 이상의 법의관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시신 1구에 평균 검안 시간을 9시간으로 잡으면 검안의 1명이 하루에 살펴볼 수 있는 시신은 많아야 2구 정도라는 점이 근거다. 

하지만 법의관은 의대생들이 기피하는 직종이라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과수도 1955년 설립 이후 57년 만인 지난해 처음으로 법의관 정원 23명을 채웠을 정도로 이 분야는 ‘3D’로 꼽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시체검안서 및 사망진단서를 경찰검시관이 작성한 변사사건 조사결과 보고서로 대체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법의관 및 경찰검시관을 충원할 수 없다면 최소한 검찰로 넘겨야 할 시신 관련 서류를 검시관이 작성한 서류로 갈음할 수 있도록 숨통을 터달라는 얘기다. 

변사사건 전문성을 강화하려고 선발한 경찰검시관은 현재 △서울·경기 각 10명 △부산 6명 △대구·인천·전남·경북·경남 각 4명 △광주·대전·울산·강원·충북·전북 각 3명 △충남·제주 각 2명 등 전국 지방경찰청에 소속돼 있다.

유제설 순천향대 법과학대학원 교수는 “동네 의사들보다 낫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부분 간호사, 임상병리사 출신인 경찰 검시관들로 검안의를 100% 대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종합병원 의사라도 해부학적 지식을 갖추지 않았다면 제대로 된 부검을 할 수 없듯 경찰검시관이든 동네 의사든 검안의도 법의학적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형사소송법, 시체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 등에 흩어진 관련 규정을 아우를 수 있도록 독립적인 법안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됐다. 유시민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2005년 ‘검시를 행할 자의 자격 및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부 산하에 검시위원회를 두고 검시관의 자격을 의사에서 △법의학 교육과정 수료자 △병리전문 자격증 취득자 △법의·병리학 전공 교수·부교수·조교수까지 확대하는 내용이었지만 폐기됐다. 

최용석 경찰청 과학수사계장은 “억울한 죽음이 없으려면 사실상 민간에 맡겨진 ‘엉터리 검안’을 국가가 철저하게 관리·감독해야 한다”며 “부검도 중요하지만 경찰 입장에서는 고인의 죽음 직전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최고의 단서를 찾아낼 수 있는 검안이 더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

■ 검안(檢案)

변사 사건이 발생하면 사건 현장에서 시신의 외부를 검사해 사망의 원인·종류 등을 알아내는 검시(檢視)의 일종. 시신을 병원으로 옮겨 개복하고 내부를 검사하는 것은 부검(剖檢)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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